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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즈 릴리즈 미

by.해픈

Ever Ever (Feat. 계피) - V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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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졸업과 동시에 꽃다발을 한 아름껴안고 밀가루와 계란이 엉겨 붙어 더러워진 바지춤을 문지르다가 배원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부터 매번 획기적인 자살을 꾀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내 지질한 마음은 바로 그전에 그만둬버리거나 시작도 채 하지 못했던 것, 남이 들으면 비웃을만한 같잖은 것들. (예: 술병에 걸려서 죽어버리려고 소주를 궤짝으로 늘어놓고 마시기) 혹은? (물 받아놓은 세면대에 머리 박고 죽어버리려고 얼굴 담갔다가 일분도 채우지 못하고 고개 들기) 그 외에도 (칼로 손목 대신 소시지 쑤시기, 락스 마시려다가 우유 마시기) 머리가 가득 찼으나 피상적인 사고에 불과하고 줄곧 실행할 용기까진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찾았다. 내가 죽을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그건 나의 막역한 이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 그건...
 
 
 
나를 방치하는 거다. 나를 차고 딴 남자 물어 떠난 배원희나, 대학 진학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전 우주베스트불알친구 배가인이나...그리고 또 누구였더라. ...아무튼 그 새끼들한테 복수하는 거다. 집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고독사 할 테다. 집세가 밀려서 단단히 빡돈 집주인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제끼면... 제일 먼저 볼 것이 내 쓸쓸한 시신일 거라 생각하니 좀 미안하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너희들이 날 이렇게 만든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나는 고개를 든다.
 
 
 
“마수진.”
 
 
 
고건희.
 
 
 
“.......어?”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히..죽었는데.
 
 
 
놀랍게도 나는 죽은 고건희의 귀신을 보게 된 것이다.
 
 
 
플리즈 릴리즈 미
 
 
 
사실 놀랍지 않을 수도? 굶주림에 헛것이 다 보이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처음엔 이 좁은 원룸에 갇혀 살다가 미쳐서 헛것을 다 보나 했다. 나는 차분하게 눈을 감고 나무아미타불을 중얼거렸다. 분명 어릴 때 열심히 교회에 다녔던 것 같은데 그리고 성실하고 나름 신앙심도 깊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그렇다면 이제껏 나의 믿음은 헛된 건가? 신앙심 같은 거 없어진지 오래지만. 숱하게 사람들을 잃고, 연을 잃으면서 성격도 생각도 죄다 삐뚤어진 게 분명하다. 나는 허기에 벌벌 진동하는 손으로 내 뺨을 때렸다. 
 
 
 
“아”
 
 
 
당연하지만 존나 아팠다. 꿈도 망상도 아니라니 그럼 이건 진짜 귀신인가? 씨발..내 쌩쑈에 어이가 없다는 듯 넋을 놓고 바라본 고건희가 며칠 동안 이어진 나 자신의 방치에 배곯이를 하며 누워있던 내 위로 빵 하나를 던져준다. 뒤진 자가 산 자의 끼니를 챙겨주다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거기서...이상하게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신화의 내용을 떠올렸는데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석류 하나도 아니고 몇 알 줏어먹은 페르세포네가 지하와 지상을 왔다 갔다 해야했던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가. 배가 고파 헐떡이는 와중에도 그까짓 허구에 망령의 호의를 착실히 무시해버린 와중이었다. 고건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심해, 마수진.”
 
 
 
이제는 귀신에게 동정받는 신세까지 되어버렸군. 그렇게 말하는 건희의 표정에서 일말의 측은함을 읽을 수 있었다. 애초에 숨길 생각을 안 하니까. 쉬웠다. 마수진은 친구 잃고 애인 잃고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은거 생활을 했고 분명 며칠 전에 죽은 고건희는 본인도 뒤진 지 얼마 안 된 와중에 친구 놈까지 따라오려고 하니 막으러 온 거겠지. 그렇다면 오만이다. 소금이라도 있으면 뿌리고 싶었다. 그냥 내버려 뒀음 했다.
 
 
 
배가 고파서 천장이 울렁인다. 그러자 돌연 내 위로 고건희가 올라탔다. 순식간이었다. 걔는 포장을 벗긴 빵 쪼가리를 그대로 내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뱉어내지 못하게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찰나에 느껴진 건 밀가루 냄새, 싸구려 초콜릿 맛 푸석푸석 하고 뻑뻑한 식감.. 이런 거였다. 근데 귀신이 이런 건 어디서 구했지? 훔쳤나? 나는 물도 없이 그 뻣뻣한 반죽 덩어리를 삼켰다. 목이 막혔다. 목울대가 움직이는 걸 확인한 고건희가 그제야 손을 떼며 내 몸 위에서 내려왔다. 빵이 내려가다가 가운데에서 턱 걸려버린 것처럼 답답하다. 나는 기침과 함께 제 명치를 툭툭 치며 씨근덕댔다. 입에 마른침이 고인다.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전부 게워냈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죽을 것 같아......먹은 게 없어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었다. 시큼한 위액이 역류한다. 코에 신물이 가득차고 목구멍이 뜨겁다. 나는 눈물콧물 추하게 질질 흘리면서 내 옆에 선 고건희를 노려봤다. 그때도 딱 이랬던 것 같았다.
 
 
 
 
 
으레 그래왔듯 비명횡사한 이의 식은 암울했다. 대부분은 어두운 낯으로 고개를 숙였고 몇몇 이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훔쳤다. 그중에서도 수진은 단연 돋보이게 육개장을 퍼먹으며 울었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이건 실감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고건희는 죽었다. 그리고 마수진은 포기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식도를 긁었던 밥알과 국물이 속에 단단히 얹혀 목구멍 깊은 곳에 손가락을 넣어 게워낼 수밖에 없던 것이다. 참 보기 싫은 것들이 물 위로 둥둥 떠다녔다. 개중엔 눈에서 나온 것도 있었다. 다른 건 할 수 없어서 그저 울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눈에선 무언가 나오고 있었기에 그럼 뭘 하고 싶어야 하지? 혼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고 등 두드려줄 사람도 없어서 인적 없는 화장실에 그 뒤로도 몇십 분 동안 변기와 씨름했다.
 
 
 
..포기했다곤 하지만 깔끔하게 한다고 한 적은 없었다고. 분명 그랬었지. 그랬었다.
 
 
 
 
 
배원희
 
ㅡ끝내자.
 
ㅡ...왜?
 
 
 
원희는 이해하기 쉽도록 부러 친절히 설명했다. 이유는 두 가지야 수진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ㅡ첫째, 네가 날 좋아하지 않아서.
 
그리고 둘째, 이렇게 이유를 물어보는 게 싫어서. 난 관계를 어떻게든 질질 끌어보려 노력했어. 그런데 사랑이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잖아. 한마디로 나는 지쳤고, 질렸어. 넌 노력조차 하지 않았지. 부정하지 마 좆같으니까. 난 사실만을 말했어. 그래서? 더 할 말 있니? 없겠지만. ...그런 너를 내가 어떻게 할까? 너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이대로...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손이 벌벌 떨렸다. 부정하려던 수를 죄다 들켜버린 탓이었다. 원희야 하지만 난 아직 너랑..... 보잘 것 없는 최후의 반론이었으나 끝마치는 일은 단연코 없었다. 배원희가 마수진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귓전에 한숨을 푹 꽂은 채 먼저 돌아갔기 때문이다. 달팽이관을 타고 뇌까지 꽂힌 정론은 어떻게든 부정하고픈 마음을 들게 했으나 반박할 수는 없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게 틀렸다고까진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결과적으로 둘 다 입에서 꺼내진 못하였으나..그랬다. 마음의 문제였다. 원체 마음의 문제란 것은 불필요한 말들에 매달려 평생을 살고 싶어지거나 생을 마감하고 싶어지게 만드니.
 
 
 
그리고 이미 실연으로 두 동강 난 마수진의 맘에 배가인이 불씨를 던졌다.
 
 
  
 
 
배가인
 
배가인은 고건희의 숨기고 싶은, 그리고 숨겨야만 할 사정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ㅡ또 죽었어?
 
 
 
고건희의 어깨가 움찔한다. 순간 티 나게 마수진의 눈치를 보며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자 배가인이 헤드셋을 벗어 목에 걸쳐놓는다.
 
 
 
ㅡ니 캐릭터 또 죽었냐고.
 
 
 
다시 시선을 화면에 고정하니 게임화면 한구석에 부활 대기 숫자가 꽝꽝 박혀있다. 10...9...8...7..... 어벙하게 두 눈을 깜빡인다. 배가인이 귓속말 채팅으로 말한다.
 
 
 
배가인>> 이번엔 뭐 하다가 죽었는데
 
 
 
....그런데 이거 꼭 대답할 의무는 없는 거지
 
 
 
고건희>> 집 가다가 총 맞아서
 
배가인>> 지랄 대한민국에 총이 어딨냐
 
 
 
적어도 뒤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보단 현실성 있는 거 아닌가 그까짓 총인데. 어느새 캐릭터는 리스폰을 마쳤다. 마수진이 팀 채팅창에다가 농땡이 피우지 말고 빨랑 튀어오라고 한다. 피씨방 라면빵 하나에 쟤는 이미 목숨을 건 것 같다. 며칠 전에도, 그전에도, 또 그전에도 죽을 뻔한 것은 자기 좋을 대로 홀라당 까먹어버리고 말이다.
 
 
 
고건희>> 마수진 어제 또
 
배가인>> 아
 
배가인>> 됐다
 
보나 마나 마수진 뒤치다꺼리하다가 ..맞지?
 
 
 
....이런 식으로 파악 당하는 거 좀 기분 나쁜데.
 
 
 
배가인>> 니들 얘기 지겨워 이제
 
 
 
어느새 스코어는 3:0으로 좁혀져있었다. 옆에서 분에 겨운 수진이 키보드를 세게 두드린다.
 
 
 
[전체] 마수진: 게임똑바로안해?키보드놨냐
 
 
 
고건희는 곧 이어지는 배가인의 귓말을 맛있게 씹고 그대로 다시 게임 화면에 집중했다. 다시 3:5로 역전한다. 이렇게 한 사람씩 일인분만 해도 반 이상은 가는 게 게임인데. 그럼 연애는, 뭐지. 집중한 얼굴로 화면에 얼굴 쑤셔 넣을 것처럼 목을 뺀 마수진 앞에서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놓지는 않았다. 마수진의 실패한 연애. 미완으로 끝나버린 것을 복기한다. 그저 안타깝다는 평을 내놓기엔 얘는 꽤나 좆같이 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어제처럼.
 
 
 
ㅡ제발......
 
손목 대신 소세지 썰었다는 건 다시 돌이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개소리다. 걔의 손목시계 아래에 자리한 두 개의 긴 가로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마수진은 배원희에게 차인 날 집으로 돌아가 제 손목을 조졌다. 그래도 본인은 모를 거다. 잊어버렸으니까. 어제도 그랬다. 연락을 받고 마수진 집까지 뛰어간 고건희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너무 급해서 두 번씩이나 틀렸다)를 누르고 문짝을 벌컥 열어젖히자마자 할 말을 잃는다. 마수진은 그냥...앉아있었다.
 
 
 
ㅡ너 뭐 하는데 지금.
 
ㅡ아무것도 안 해. 보면 알잖아.
 
 
 
고건희는 닭갈비 집에서 테이블 닦다 말고 문자를 확인, 사장한텐 화장실 다녀온다 구라치고 앞치마 벗어던지며 거기서부터 약 오분 정도 달려온 터라 아무 일도 없는 모습에 맥이 탁 풀려 현관문을 짚고서 숨을 급히 몰아쉰다. 갑자기 주입되는 공기에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다.
 
 
 
ㅡ그럼 왜 불렀어?
 
ㅡ그냥. 친구끼리 불러볼 수도 있지. 그런데 고건희 너....
 
나한테 아무 일도 없으니까 되게 실망한 표정........
 
ㅡ무슨 헛소리야
 
 
 
별거 아니면 나 다시 간다. 알바 하다가 몰래 나온 거라 지금 들어가야 돼. 건희가 다시 문고리를 잡자 수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건희의 손목을 붙든다.
 
 
 
ㅡ잠깐만.
 
ㅡ.....
 
ㅡ뭔가 생각났어. 근데 지금 너 가면 다 까먹을 것 같아. 가지 마.
 
 
 
쏘아대는 말투. 분명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겠지. 그런데도 생각난 게 무엇일지 궁금해서.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입에선 쓸데없는 말만 나올 것이 분명한데도. 건희는 당혹감에 인상을 찌푸리며 문고리와 마수진과 이어진 사이에서 잠시 머뭇대다가 주머니 속 진동을 느끼고
 
 
 
ㅡ...원희랑 다시 이어지는 법,
 
ㅡ.......내일 보자.
 
그럼 그렇지. 망설인 내가 죽일 놈이다.
 
 
 
문 닫히는 소리와 현관 앞에 가만히 맨발로 선 마수진이 있었다.
 
 
 
 
 
ㅡ그래서 언제까지 할 거야?
 
 
 
배가인이 나무젓가락으로 컵라면의 면을 집어올렸다. 밑도 끝도 없이 던져진 말이지만 뜻을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ㅡ나도 몰라. 걔가 그 짓거리 그만 둘 때까지.
 
ㅡ그럼 계속해야겠네.
 
 
 
실제로 그랬다. 
 
..그 말을 끝으로 배가인은 다시 오지 않았다. 친구 두 명이 눈앞에서 삽질하는 꼴이 아니꼬워서일까 자기 자신을 방해꾼이라 생각해 그들에게서 꺼져준 걸까 어쩌면 둘 다 아닐 수도. 어쨌든 수진이 가인을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ㅡ번호 바뀌었는데요.
 
 
 
이후로 수진은 가인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댓글을 남겼지만(구남친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질척임) 그러는 족족 칼같이 차단 박혔다.(차단은 하고 왜 답장은 안 해?) 마수진이 새로 판 계정이 일곱 개 째였을 즈음 배가인은 계정을 터트렸다.
 
 
 
ㅡ맘이 너무 아파.
 
ㅡ꼭....배원희한테 차였던 것처럼...
 
 
 
이별은 때때로 사람을 굳세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이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산산조각 내기도 한다. 이 경우가 더 잦을 것이라고. 고건희는 그런 확신을 했다.
 
 
 
 
 
잿더미
 
“왜 다 나를 떠나지?”
 
학교라는 비합리적 공간에 아침 자습부터 야간자율까지 집에서 보는 식구들 보다 더 많은 시간 부대낀 학우들은 졸업과 동시에 빨간약이라도 냅다 집어먹은 양 각성해 마수진에게 일침 꽂고 떠났다. 덕분에 마수진은 영영 멈춘 사람이 되었다. 그들에게 책임 물을 생각은 없다. 다 자업자득이니까. 마수진의 어중간한 마음이...항상 문제였다. 마수진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쁜 놈이다. 수진은 수돗물로 입을 대충 헹구고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나는 그 옆에 앉았다. 오후의 볕이 창문을 뚫고 작열한다. 수진이 한 쪽 팔을 들어 눈을 가린다.
 
 
 
“너의 그런.. 모습 때문에.”
 
무신경 한 거.
 
 
 
수진이 코웃음 친다.
 
“그럼 넌 왜 안 가는데?”
 
그리고 이런 거. 굳이 말하기 싫은 거 내 입으로 꺼내어 놓게 만드는
 
“그것도 네 그런 모습 때문에.”
 
내가 없으면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니까. 마수진이 기운 없는 소리로 웃는다. 뭔 말인지 모르겠어..... 이해가 안 돼. 상관없다. 이해를 바랐다면 처음부터 아무 말도 안 했겠지. 근처에 자꾸 불확신을 꺼내어놓고,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고, 결국 지쳐떠나면 인생 끝난 것처럼 구는 징글맞은 모습. 모순적이게도 그게 나를 마수진의 옆에 매어놓는 것이 된다. 나조차도 이해가 안 돼서 문제인걸.
 
 
 
“고마워.”
 
아, 진짜 싫다.
 
 
 
“그냥 너 보이니까 말하고 싶어서...이때까지 쑈 한 거 다 너 때문이야.”
 
“알아.”
 
“알아? 존나 웃기다. 아는데 왜 와.”
 
 
 
나는 따라 웃다가 곧 입을 다문다. 그러게 왜 올까. 사실 내가 없으면 죽는다는 것도 다 허울좋은 거짓말일 뿐이고 받아줄 사람 없으면 안 할 것도 다 아는데. 어차피 제대로 된 마음으로 죽으려 하는 것도 아닌 거 알고 그런데
 
 
 
ㅡ걔를 사랑해?
 
아니, 나는 그저 걔가..나를....
 
“난 네가 필요해.”
 
필요로 했으면 좋겠어.........
 
ㅡ.....
 
“너까지 이렇게 영영 사라지면 난 정말”
 
ㅡ진짜 못 봐주겠다 니네.
 
“죽을 거야....”
 
 
 
마수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이미 뒤졌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원래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이미 실컷 떠들어댔지만. 이 짓거리를 누구보다 끝내고 싶으면서 끝내고 싶지 않아 하는 쪽은 누구지. 분명 나일 거다. 진짜 못 봐주겠다 니네. 경멸하는 눈초리를 보내고 떠난 배가인. 등신 같은 거 안다. 그래서 괜히 엮이기 싫은 것도 이해해. 배가인의 멸시와 마수진의 아직 덜 이어 붙은 마음 그 위에 던져진 불붙은 성냥개비. 그리고 나는 잿더미가 된 그걸 싹싹 긁어모아 끌어안는다. 나는 이런 식으로 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해. 네가 살았으면 하는 걸 네가 계속해서 죽으려고 발악하고 난 그걸 따라다니고,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상관없어.”
 
어차피 넌 내일이면 이것도 다 잊을 테니까. 이게 낯간지럽고 눈시울 붉히게 만드는 첫 번째 고백도 아니고, 항상 반복되고 있는. 그런 흔한 오후의 풍경이다. 그래도 울면서 육개장 처먹다가 체한 건 오바였어 마수진.
 
“계속 하고 싶으니까.”
 
우리가 항상 원하던 답과, 마수진이 소리 죽여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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