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당신의 성인을 알아보는 법

by.작반

 

 

 

1. 첫 번째 대화

 

나 가끔 네가 죽는 꿈을 꾼다? 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야, 케니, 꿈인데 말이 안 될게 뭐가 있어. 꿈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잖아. 난 얼마 전에는 툴 쉐드의 솔로 무비가 나오는 꿈도 꿨다고. 또 뭐더라? 아, 맞다. 아직 하지도 않은 풋볼 경기에서 우승컵을 따는 꿈도 꾸고, 뭐 그런 거지. 아무튼 내 말은, 요즘 이상하게 네가 죽는 꿈을 자주 꾼다는 거야. 첫 번째로 꿨던 꿈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응? 말하지 말라고? 왜? 기분 나빠서 그래? 네가 싫으면 말 안할게. 근데 한 번 정도는 너한테도 말해주고 싶어서 그래. 뭐랄까, 진짜, 진짜 이상하단 말이야.

 

…그럼 말한다? 알았어. 이번 한 번만 들어줘. 아무튼 우리는 같이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어. 뭐 특별한 버스도 아니고, 우리가 맨날 타는 스쿨버스 있잖아. 가끔 구린내가 진동하는 그 버스. 그래, 우리는 같이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어. 내 옆에는 네가 앉아 있었고, 다른 쪽에는 카일이 앉았고. 뭐, 그 옆에 카트맨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근데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네가 맞았어. 누가 쐈는지도 모르고, 왜 쐈는지도 모르는데, 가장 이상한 건, 다른 사람은 다 멀쩡한데 너만! 너만 죽었다는 거야!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외쳤어. 맙소사, 누군가 케니를 쏴 죽였어!

 

나는 네 가슴팍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걸 지켜봤고, 눈에 초점이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도…. 아, 좀 역겹다, 그치. 그냥 넘어갈게. 아무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장례식장에 모여서 너를 위해 기도했어. 케니가 천국에서 행복하게 해주세요. 나는 흑백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뚝뚝 울었고, 다른 녀석들도 훌쩍거리더라. 사진 속에서 네가 너무 행복하게 웃고 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눈을 딱 떴을 때 보인 건 내 방 천장이었어. 그제야 나는 네가 죽은 게 꿈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아침이나 먹었지. 그때 뭐냐, 내가 눈이 좀 빨갛게 부어서 학교에 왔던 날 있잖아. 좀 부끄럽지만 그 날이야. 기억날지 모르겠네.

 

그래, 그 뒤로 다시 안 꿨으면 너한테 말도 안 꺼냈을 거야. 너는 그 뒤로도 종종 내 꿈에 나타나서 죽어. 불의의 사고로 죽기도 하고, 가끔은 너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아까처럼 진짜진짜 어처구니없게 죽기도 하고 말이야. 내가 기억하는 제일 어이없는 죽음이 뭔지 알아? 우리가 다 같이 산에 갔는데 조난을 당한 거야. 일단 뭘 먹긴 해야 할 거 같아서 우리는 힘들게 불을 피우고 주변을 막 뒤졌지. 그러다 우리는 버섯을 찾았어. 뭐, 우리가 찾은 버섯이 독버섯이었다든지, 그런 거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을 텐데, 풉, 왜 죽었는지 알아?

 

…뭐? 스컹크? 아, 내가 전에 말해줬었나? 맞아, 우리가 버섯을 따는 동안 네가 들여다본 나무 구멍 안에 스컹크가 있었고, 너는 스컹크 방귀를 제대로 뒤집어썼는데,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죽었어. 아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알았어, 알았어, 그만 말할게. 미안해. 기분 나쁘게 하려고 꺼낸 말은 아니야. 오히려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그 사람이 죽는 꿈은 오히려 오래 산다는 뜻이라더라. 너는 아마도 엄청 오래오래 살 거야. 내가 이렇게나 네가 죽는 꿈을 꿔주고 있잖아, 케니.

 

 

 

 

2. 최악의 하루

 

나는 아삭, 하며 이에 부드럽게 부서지는 사과를 우물거렸다. 내가 아침을 먹으며 우리 집 냉장고 정리를 하는 동안 스탠은 소파에 늘어져 앉아 천장을 보며 말했다. 오늘도 네가 죽는 꿈을 꿨어. 저 문장만은 며칠이 지나도 바뀌질 않아서 저 말을 하는 스탠의 호흡마저 외울 지경이다. 그다지 정리할 것도 많지 않아 나는 금세 냉장고를 비워내고 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그러고는 스탠에게 유통기한이 언제인지도 모를 젤리를 던져줬다. 저번에 누구한테 받았던 건데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스탠은 타고난 운동 신경으로 잘 잡아내서 손가락으로 내용물을 하나 건져내 입에 넣었다.

 

“으엑, 냉장고 맛 나.”

“그럼 나 줘.”

“싫어.”

 

스탠은 냉장고 맛이 난다는 젤리를 입에 쏙 집어넣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이번에는 네가 어떻게 죽었냐면. 블라블라. 아, 응, 그래.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집안일을 했다. 바닥의 쓰레기들을 발로 걷어차 소파 밑으로 안 보이게 밀어 넣고, 얼마 전 아빠가 깨뜨린 유리창에 붙여놓았던 테이프를 튼튼하게 보완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스탠은 내가 죽는 꿈에 대한 이야기나 하며 젤리를 마지막 하나까지 싸그리 비웠다. 주말 아침에 느닷없이 나타난 주제에 딱히 미안하다든지 도와주려는 기색조차 없다. 나는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창문을 얄팍한 커튼을 쳐 가렸다. 이렇게 내 할 일은 대충 끝이다.

 

“야, 언제까지 있을 거야.”

 

나는 소파 앞에 서서 스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스탠은 눈을 굴려 나를 올려다본다. 동그란 눈동자가 내 얼굴을 꼭꼭 씹듯이 훑는다. 그건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거북하고 세심하다. 아마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

 

“이제 가야지, 아님 같이 영화 보러 갈래?”

 

나는 말없이 몇 초간 있다 스탠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켰다. 손을 붙잡은 채 스탠이 거뜬히 일어난다. 마주보고 서자 큰 차이 없는 눈높이가 닿는다. 아마도 그새 스탠의 키가 조금은 큰 것 같다. 내 시선이 약간은 위로 향해있다.

 

“그래. 영화비는 네가 내라.”

“아, 왜.”

“네 얘기 착하게 잘 들어줬잖아.”

“난 네가 걱정돼서 해주는 말들이라고!”

 

웃기시네. 나는 털레털레 쫓아오는 스탠보다 몇 발자국 앞장서서 걸었다. 그러다 현관을 열고나서기 직전에 걸음을 멈췄다. 스탠이 내 뒤통수에 코를 박을 뻔 했는지 화들짝 놀라 걸음을 덩달아 멈추는 게 느껴졌다.

 

“아! 야, 갑자기 멈추면 놀라잖아.”

“꿈같은 거에 너무 마음 쓰지 마.”

 

다행히, 나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스탠을 다루는 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오히려 명료한 편에 속한다. 이렇게 걔의 얄팍하고 무른 마음을 건드리면 된다. 그럼 영화 표 값 정도는 자기가 내려고 할 걸. 그리고 그 예상은 잘 맞아 떨어져서 나는 팝콘까지 얻어먹을 수 있었다. 스탠은 얼마 전에 용돈을 받아서 한 턱 내는 거라며 말했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짭짤한 버터향이 나는 팝콘을 입 안에 우겨넣고 냠냠 씹었다. 꿈이 사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든, 스탠이 나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이 동정심이든 뭐든 간에, 팝콘이 맛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스크린에 대문짝만하게 사람의 목이 날아가는 걸 지켜보며 스탠의 영화 선정이 최악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빠르게 다 먹어치운 팝콘 통에 얼굴을 쳐박고 토악질을 하는 모습을 보니, 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라라 랜드 재개봉 한 거 보자고 했잖아, 멍청아. 나는 스탠의 등을 퍽퍽 두들겼다. 귓가로는 철퍽거리며 피가 쏟아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스탠이 팝콘 통에 쳐박았던 얼굴을 들어 올려 스크린을 한 번 보더니, 슬그머니 나를 바라본다. 얼굴에 열이 몰렸는지 어두운 실내에서도 약간 불그스름한 게 보였다. 나는 스탠을 모른 척하고 영화나 마저 보았다.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줄거리가 대체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기억나는 거라고는 붉게 튀어 오르던 핏방울과, 스탠이 안고 있던 빨간색의 팝콘 통과, 어둠 속에서 빛나던 붉게 충혈 된 눈 뿐.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걷다가 1달러짜리 지폐를 운 좋게 주웠다. 푼돈이지만 또 그게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노래를 흥얼거렸다. 팝콘을 먹어서 배가 불렀기 때문에 저녁으로 나온 내 몫의 냉동 핫도그를 캐런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 그러고는 바로 침대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했다. 많이 움직이면 배가 금방 꺼지기 때문에 큰 일이 없으면 가만히 누워있는 게 가장 좋다. 나는 핸드폰으로 새로 나온 무료 앱을 둘러보다가, 그룹 채팅에 끝내주는 가슴 사진을 한 번 올리고, 유튜브에 재밌는 영상이 올라온 게 없는지 체크했다. 그러다 자극적인 썸네일을 발견하고 클릭한 찰나, 화면이 온통 스탠의 얼굴로 가득 차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다.

 

“여보세요?”

‘케니, 자냐?’

 

내가 자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스탠은 오늘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갑자기 내일까지 제출할 과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제인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집에 가는 길에 본 강아지 이야기 등, 횡설수설 이런저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뜬금없다는 생각은 들어도 그렇게 귀찮거나 하지도 않았다. 나는 적당한 말들로 대꾸하며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돌리고, 아까 보려던 영상이 무슨 내용인지 슬쩍 확인하려고 버튼을 누른다. 그때 스탠이 툭 뱉은 말이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사실은 네가 걱정 돼.’

 

나는 숨을 멈춘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고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산소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기 직전에 폐에 가득 찬 숨을 내쉬었다. 스탠은 내가 답이 없든 말든 제 할 말을 시작했다.

 

‘자꾸만 네가 죽는 꿈을 꾸는 게 이상해. 어처구니없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현실성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그런데 어떻게 신경을 아예 끌 수가 있겠어. 게다가 아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자꾸만 가짜 피로 범벅된 가짜 시체랑 네가 죽는 모습이랑 겹쳐 보이는 거야. 그래서 옆에 있는 너를 봤는데, 네 얼굴은 허여멀건하지만 분명히 살아있었어.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했던 거지? 케니, 혹시 나한테 말 안한 게 있는 거야?’

 

스탠은 내 답을 기다리는 듯 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스탠은 재촉하듯 한 번 더 물었다.

 

‘케니?’

“아, 미안. 잘 안 들렸어. 당연히 괜찮지. 그런 일이 있으면 너한테 말을 안 할 리가 없잖아, 스탠.”

 

내가 너무 기계처럼 말했나 싶었지만 스탠은 아까보다는 꽤 안심하는 듯 했다. 나 속이지 마, 가볍게 애원하는 어조의 말을 하는 건 좀 우스웠다. 거짓말, 내가 사라져도 꽤 잘 살 거면서. 스탠은 내일 학교에서 보자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기자 내가 보려다 말았던 유튜브 영상이 저절로 틀어졌다. 그러나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를 않아 화면을 꺼버리고 천장이나 올려다보았다.

 

나 속이지 마, 네가 걱정 돼,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했던 거지?

 

문장들이 분절되어 공중을 떠다닌다. 얼룩진 천장이 오늘따라 시큰하게 다가온다. 한 순간에 감상에 젖어 뱉는 말들은 달콤했지만 어차피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불안하게 깜빡이는 형광등의 빛이 눈부셔 팔을 눈꺼풀 위에 올려두었다. 속이는 쪽도, 떠나는 쪽도, 사실은 내가 아니라 너인데.

 

 

 

 

3. 친애하는 일기장에게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하나 구했다. 시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일 자체가 그렇게 힘든 편은 아니다. 가장 좋은 점은 다칠만한 게 주변에 하나도 없다는 거다. 가장 위험한 거라고 해봤자 빵을 자르는 울퉁불퉁한 칼 정도이다. 위에 적는 걸 깜빡했는데 사거리에 있는 조그만 식료품 가게다. 아무튼 학교가 끝나자마자 당장 달려가면 늦지 않을 수 있다.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중간에 잘리지 않고 (혹은 죽지 않고) 오랫동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로.

 

그래서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가느라 스탠이 풋볼 시합을 하자는 걸 거절했다. 어차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아쉽지는 않았다. 무리하게 움직이면 소화가 빨리 된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꽤 중요한 문제다. 그나저나 스탠은 요즘도 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낸다.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꿈속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 같다. 처음에 스탠이 그런 말을 꺼냈을 때에는 엄청 놀랐는데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내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스탠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뭔가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게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스탠은 여전히 스탠이고, 내 죽음은 막을 수 없다. 스탠의 입을 통해 내 죽음을 들으면 더더욱 끔찍하게 들린다. 하찮고 구질구질하다. 누군가는 미스테리온의 능력이 멋지다고 했지만 그건 정말 좆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정말, 정말 좆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개새끼들.

 

스탠은 오늘도 내가 어제 죽었던 일을 꿈으로 꾸고 나한테 전화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막 전화가 와서 들어주다가 하마터면 늦을 뻔했다. 스탠은 나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한편으로는 가장 내밀한 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스탠이 하는 말들은 전부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다가온다. 동시에 너무 미지근한데 그 말들에 델 것 같기도 하다.

 

가장 최악인 건 자꾸만 내가 스탠에게 기대를 건다는 거다. 어차피 걔는 내 죽음에 대해 큰 자각을 하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꿈에서 당장 깨어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로 나한테 말을 하다 보니 제 감정을 착각하고 있는 거다. 이런 꿈을 꾸기 전 매번 내가 죽었다는 사실에 단편적으로 놀라고 끝나버렸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매달리면 못 견뎌 발을 빼버릴 녀석인데, 그런데도 너로 인해 (지금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하지만 스탠은 내가 없어도 그만일 거고, 분명히 행복하게 잘 살―아, 그만하자. 그런 걸로 치면 나도 그럭저럭 견디며 잘 살아온 편이다. 아무튼 이런 건 씨발, 새삼 너무 좆같다.

 

그러니까 나는 내 유일한 구원이 네가 아니었으면 해

 

왜냐하면 너는

 

너무

 

 

 

 

4. 비교적 아름다운

 

스탠에게 차가 돌진하고 있었다. 무단횡단도 아니었는데 너무 당당히 차가 달려오고 있어서, 몇 걸음 떨어져서 걷고 있던 나는 어떤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몸을 날려 스탠을 앞으로 밀쳐냈다. 덕분에 스탠은 바닥에 제대로 엎어졌지만 돌진하는 차에게서 빗겨갈 수 있었고, 나는 그대로 들이받혀 허공에 굴렀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에, 눈앞은 따뜻하고 흐리다. 시야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내 몸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팔로 바닥을 더듬었다. 고개를 들고 싶었는데 목이 마음처럼 움직이질 않아 답답했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 몇 분 내로 이번 생이 끝날 것을 직감한다. 그때 스탠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머리 위에서 들렸다. 꽤 멀쩡한 목소리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한 가지를 확인했기에 미련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지겹게도) 스탠이다. 걔는 내 방 침대 앞에 서서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 뻐근한 몸을 일으켜 스탠을 바라보았다. 배신자! 스탠이 눈을 뜬 나를 보고 다짜고짜 뱉는 말은 황당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는 티셔츠 위에 늘 입는 주황색 겉옷을 걸쳤다. 스탠은 내가 움직이는 모습을 눈으로 졸졸 쫓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고는 말한다. 나한테 숨기는 거 있냐?

 

당연히 없지. 내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일부러 능글맞은 얼굴을 하고 스탠에게 아침은 먹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스탠은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왔는지, 들은 척도 안하고 제 할 말을 한다.

 

스탠의 주장이란 이러했다. 어제도 늘 그렇듯 꿈을 꿨는데,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에게서 내가 자기를 구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이번에도 늘 꾸던 악몽이라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서 보니 꿈에서 제가 구르는 바람에 다쳤던 팔꿈치가 그대로 딱지가 앉은 채로 있었다는 거다. 아스팔트 바닥에 체중이 실린 채 갈려 너덜너덜해진 피부 결에, 여섯 가닥 정도 할퀴어진 모양까지 완벽히 똑같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딱히 변명할 말도 찾지 못해서 허공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내가 변명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건지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더 깊게 파고드는 순간 나는 지금까지 쌓아온 방어기제를 모조리 잃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끝까지 고집을 피웠다. 그럴 리가 없어, 어제 그냥 넘어진 걸 토대로 꿈을 꾼 거겠지. 그러나 스탠은 완강했다.

 

이 거짓말쟁이!

 

평소에 비하면 이번 죽음은 비교적 아름다운 죽음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꽤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린 것 역시 틀림없는 것 같다. 매일매일 천국과 지옥을 반복하는 나도 있는데, 네가 울면 나는 어떻게 해야 돼. 어쩐지 요즘 들어 스탠이 우는 모습을 자주 보는 것 같다. 나는 떨리는 걔의 어깨를 보면서 같이 울 수도 없었다. 스탠까지 신경 쓰기에는 내가 너무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넌 마음이 약하고, 잘 휩쓸리고,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면서 그걸 조금도 모르는데다, 그리고,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그런 위선적인 널 많이 좋아해서 그래. 몇 번을 생각해도 완벽한 손해다.

 

정확히 재작년 겨울 이후로 처음 흘려보는 눈물이었다. 스탠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나와 같이 있어주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내일도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5. 당신의 사랑을 알아보는 법

 

이번에는 사우스파크가 통째로 사라지는 꿈이었어. 사실 여기뿐만 아니라 온 지구의 생명체가 멸종하는 꿈. 왜냐하면 정말 거짓말 안하고 달덩이만한 운석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거든.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열 때문에 하늘이 온통 빨갛게 보일 지경이었어. 나는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봤어. 나는 공원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는지 내 발밑에 축구공이 있더라. 마지막만큼은 가족들이랑 보내고 싶어서 공을 뻥 차고 집으로 막 뛰었지. 주변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어. 사람들은 다들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고, 스쿨버스는 전봇대에 들이받힌 채로 기름을 쏟아내고 있고, 건물에서 연기가 펄펄 솟아나는데 왠지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안 보이는 거야. 분명히 여기는 사우스파크가 틀림없는데. 게다가 집으로 가는 길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너무 무서워서 나는 계속 막 뛰었어. 머릿속은 새하얘져서 이제는 대체 뭐한테서 도망치고 있는 건지, 가려던 곳이 어디인지도 잊어버리고.

 

운석이 정말로 이 앞까지 날아왔을 때 나는 달리던 걸 딱 멈췄어. 포기한 게 아니라, 내 앞에 너가 있었거든. 나는 너한테 막 달려가서 물었어. 야, 케니! 젠장, 우리는 이제 다 죽을 거야! 어떡하면 돼? 내가 호들갑을 떨면서 말하는데 너는 정말 나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안 하더라. 괜찮다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었잖아. 뭐? 그걸 왜 지금 너한테 따지냐고? 아니, 일단 들어봐. 아무튼 운석은 그 사이에도 점점 가까워지고, 나는 목석같이 서있는 네 대답을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어서 널 데리고 엄청 뛰었어. 아까는 분명히 기억이 안 났는데 이제는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디였는지 막 술술 기억나는 거야. 한 블록만 지나면 우리 집이 있는데, 우리 집 우체통까지도 저만치 보이는데 엄청난 굉음이 들리면서 땅이 막 흔들리더라.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진짜 엄청난 진동이었어. 그래서 중심을 못 잡고 바닥에 고꾸라졌는데 뒤통수를 바닥에 박는 바람에 피가 질질 나더라.

 

그런데 아파할 새도 없이 별똥별처럼 돌무더기들이 하늘에서 한가득 내리기 시작했어. 그때야 나는 정말 꼼짝없이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집이 바로 저기에 있는데, 그게 너무 억울하고 아쉬워서 막 눈물이 났어. 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그 상황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 끊지 말고, 케니! 아무튼 순간 너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차피 이 정도 운석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겠지만, 정말로 머릿속에 절박하게 한 문장만 떠오르더라. 살고 싶어, 딱 이 네 글자만 무서울 정도로 간절하게. 그때 내 몸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거야. 몰랐는데 아직도 내가 네 손을 잡고 있었더라고. 너도 같이 넘어진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얼굴이 온통 피 칠갑이 된 채로 나를 내려다보더라. 그러다 몸을 웅크려서 나를 감싸는데, 그 순간 눈이 떠졌어.

 

개꿈이라고? 맞아,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오늘 일어났는데 사우스파크는 보도블록 공사를 하고 있는 거 말고는 정말 조금도 변화가 없었거든. 넘어질 때 깨진 내 뒤통수도 멀쩡하고 말이야. 그런 꿈은 처음이었어. 정말 무서웠는데, 꿈속의 너가 같이 있어줘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린 진짜 망했어, 너도 알지.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고 솔직히 음, 너도 아무 것도 모르는 거 같지만, 이런 꿈을 꿔보니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곧 멸망할 지구에서 뒤통수가 깨진 나든, 지독한 스컹크 방귀를 뒤집어 쓴 너든 전부 똑같아. 나도 알아. 그 정도는 이제 나도 안다구.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이런 꿈을 계속 꾸는 한, 나는 널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절대로.

No Surprises - Radiohead
00:00 / 00:00
bottom of page